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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양 / 미국사 / 08

제08장 1890–1920

진보주의, 제국주의, 제1차 세계대전

미국은 국내에서 공적 책임을 넓히면서도 해외의 지배와 전시의 억압을 확대했다.

본문 약 9분인물·지명 / 세계사 / 사료 읽기

민주주의를 넓힌다는 약속은 누구에게 적용되었고, 누구를 남겨 두었을까?

제1차 세계대전 해군 모병 포스터: 퍼스트 콜 · 1917
관람자를 곧바로 가리키며 해군 입대를 촉구하는 엉클 샘. 짧은 문구와 시선, 손짓은 멀리 있는 전쟁을 개인의 의무로 바꾸어 호소한다. 전시 동원은 공장과 군대뿐 아니라 이미지와 언어로도 이루어졌다.James Montgomery Flagg · 소장처·원본 및 이용 안내

개혁의 여러 목소리와 불평등한 시민권

1890년대 이후 산업도시의 빈곤과 기업 독점, 정치 부패를 고치려는 여러 운동을 흔히 ‘진보주의’라고 부른다. 개혁가들은 하나의 집단이 아니었다. 언론인은 기업과 도시정치의 부정을 폭로했고, 제인 애덤스 같은 인물은 이주민 동네에서 교육과 복지 활동을 펼쳤다. 노동자와 여성들도 작업장 안전과 정치 참여를 요구했다. 이들은 시장의 성장만으로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다만 무엇을 고치고 누가 결정할지를 놓고 개혁 세력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정부는 일부 대기업을 규제하고 식품·의약품 안전과 자연보전에 연방정부가 개입하도록 했다. 주와 도시에서도 노동시간과 공중보건, 선거제도 개혁이 추진되었다. 1920년 수정헌법 제19조는 성별을 이유로 투표권을 부정하지 못하게 했다. 이는 오랜 여성운동의 성취였지만 모든 여성의 실제 투표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특히 남부 흑인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인두세와 문해력 시험, 폭력에 가로막혔다. 일부 개혁가는 인종분리와 우생학적 차별을 지지하기도 했다.

개혁가들은 어디에서 해법을 배웠을까

공장의 화재와 식품의 위생 문제, 도시의 전염병은 개인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위험을 드러냈다. 개혁가들은 조사와 통계를 이용해 문제를 공적인 의제로 만들었다. 이주민이 살던 동네의 복지관은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는 동시에 생활 조건을 조사하는 장소가 되었다. 언론의 폭로는 관심을 모았지만, 실제 제도를 바꾸려면 주민의 조직과 입법, 행정의 집행이 필요했다. 기업도 모두 같은 입장은 아니었다. 어떤 기업은 규제에 저항했고, 어떤 기업은 경쟁 조건을 통일하는 규칙을 받아들였다.1

미국의 개혁은 국경 안에서만 발명되지 않았다. 유럽의 도시 행정과 사회보험, 노동 보호 제도를 관찰한 사람들이 대서양을 오가며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같은 제도라도 미국의 연방제와 법원, 인종 질서 속에 들어오면 다른 결과를 낳았다. 외국 사례를 배운다는 것은 그대로 복사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도시와 주의 실험, 여성과 노동자의 요구가 국가 간 지식의 이동과 만났다. 이 연결을 보면 미국이 언제나 유럽과 완전히 다른 길만 걸었다는 인상도 달라진다.

해외 팽창과 식민 지배

국내의 개혁과 해외의 지배 확대는 같은 시기에 진행되었다. 미국은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뒤 푸에르토리코·괌·필리핀을 넘겨받았고, 별도로 하와이도 병합했다. 쿠바는 미국에 병합되지는 않았지만 강한 간섭을 받았다. 필리핀 독립 세력은 새로운 미국 지배에 저항했고, 1899년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 정부는 1902년 전쟁 종결을 선언했으나 저항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시장과 해군기지의 확보, 인종적 우월감은 팽창을 뒷받침했고, 미국 안에서도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독립을 도운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할 때

1898년의 전쟁은 쿠바의 독립전쟁, 미국의 경제적 이해와 여론, 해군력 확대가 만난 사건이었다. 미국은 쿠바의 독립을 내세웠지만, 전후에는 쿠바의 정치와 대외관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필리핀에서는 에밀리오 아기날도 등이 독립을 추구했으나 미국의 지배가 새로운 전쟁으로 이어졌다. 자유를 말하는 나라가 해외 영토를 다스릴 수 있는지를 두고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반제국주의 논쟁이 일어났다. 경제적 계산뿐 아니라 인종과 문명을 서열화하는 시각이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었다.2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의 주민에게 미국의 지배 아래 산다는 사실은 본토 주민과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었다. 영토의 지위와 시민권, 헌법 적용을 둘러싼 논쟁은 제국 확대가 미국 내부의 법 문제이기도 했음을 보여 준다. 파나마운하를 둘러싼 개입과 카리브해 지역의 영향력 확대 역시 바닷길과 금융, 군사력을 연결했다. 국내의 독점 규제와 해외의 지배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정치 세력과 같은 국가가 동시에 추진할 수 있었던 정책이었다.

전쟁 동원과 전후 질서의 모순

1914년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은 처음에 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협상국과의 무역·금융 관계가 깊어졌고,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전 재개와 멕시코에 동맹을 제안한 치머만 전보 공개가 참전 압력을 높였다. 1917년 윌슨 정부는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군수 생산과 병력 동원은 국가의 역할을 키웠고, 흑인들의 북부 도시 이주도 촉진했다. 동시에 정부는 간첩법과 선동법으로 반전 발언을 처벌했다.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전쟁이 국내의 표현 자유를 좁힌 것이다.

1918년 휴전 뒤 윌슨은 국제연맹과 새로운 국제질서를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 상원은 베르사유조약 비준을 거부했고 미국은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않았다. 민족자결이라는 약속도 식민지 주민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1919년의 파업과 인종폭력, 급진주의자에 대한 탄압이 전후의 불안을 드러냈다. 이 시기의 개혁은 국가의 책임과 시민 참여를 넓혔지만, 제국 지배와 차별을 함께 없애지는 못했다. 변화의 방향은 ‘진보’라는 이름이 아니라 권력과 권리를 둘러싼 구체적인 선택에 달려 있었다.

전쟁의 승리가 같은 약속을 뜻하지는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 국가들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제국의 식민지에서도 병사와 노동자, 자원이 동원되었다. 미국의 참전은 병력과 생산력을 보탰고, 정부는 전쟁 자금과 물자를 모으며 국민의 생활에 깊이 개입했다. 전쟁에 반대한 사람을 처벌한 일은 국가를 비판할 자유의 한계를 드러냈다. 여성의 전시 노동과 참정권 운동이 이어지는 한편, 흑인들의 북부 이주는 일자리와 정치적 가능성을 넓히면서 새로운 인종적 긴장도 낳았다. 동원이 모두에게 같은 시민적 대우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은 보편적인 원칙처럼 들렸지만 실제 적용은 선택적이었다. 한국과 중국, 인도와 이집트의 활동가들은 그 언어를 각자의 독립 요구에 맞게 활용했다. 이들은 서구 지도자의 약속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청중이 아니었다. 독립운동의 기존 조직과 지역적 갈등이 국제 질서의 틈을 이용한 것이다. 에레즈 마넬라의 연구는 이런 주도성에 주목한다. 강화회의의 실망은 식민 지배를 받아들이게 하기보다, 서구 강대국에 기대지 않는 새로운 운동의 방향을 고민하게 했다.3

역사가의 질문 · 말이 국경을 넘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마넬라가 보여 주는 민족자결의 세계사는 미국 대통령의 말만으로 다른 나라의 역사를 설명하지 않는다. 같은 표현이 서로 다른 사회에서 어떻게 번역되고 활용되었는지를 묻는다. 국제적인 영향과 현지의 주도성을 함께 보는 것이다. 미국사에서 다른 나라가 등장할 때도, 미국이 무엇을 했는지만이 아니라 상대 사회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 살펴야 관계의 역사가 보인다.3

민족자결의 약속과 1919년의 아시아

윌슨의 민족자결이라는 말은 식민지 주민에게도 기대를 주었다. 한국의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 참가자들은 각자의 요구를 전후 국제질서의 논쟁과 연결했다. 그러나 승전국은 자국과 동맹국의 식민 지배를 일관되게 해체하지 않았다. 이 운동들은 미국 대통령의 말만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된 저항과 국내외 활동가의 연결에서 성장했다. 같은 약속을 누가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했는지가 중요하다.

어떻게 이어졌을까

01 / 배경과 원인

산업사회의 불평등과 부패는 개혁을, 시장·전략 거점의 확보와 인종적 우월감은 해외 팽창을 뒷받침했다.

02 / 사람들의 선택

규제와 참정권 운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식민지 획득과 저항 전쟁이 벌어졌고, 1917년 참전은 국가의 동원과 통제를 확대했다.

03 / 변화와 결과

정부의 사회적 책임과 여성의 헌법적 투표권 보호가 확대되었으나, 인종차별·제국 지배·표현의 자유 제한은 지속되었다.

시간의 흐름

  1. 미국·스페인전쟁 뒤 미국이 해외 영토를 얻었고, 별도로 하와이를 병합했다.
  2. 미국·필리핀전쟁이 벌어졌다. 미국의 1902년 종전 선언 뒤에도 저항은 이어졌다.
  3. 순수식품·의약품법과 육류검사법이 제정되었다.
  4.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휴전 뒤 베르사유조약과 국제연맹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5. 수정헌법 제19조가 비준되었지만 인종에 따른 투표 장벽은 남았다.

인물과 장소

주요 인물

제인 애덤스
시카고 헐하우스를 공동 설립해 이주민 교육과 복지, 사회조사에 힘썼다. 여성 참정권을 지지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는 평화운동으로 대응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기업 규제와 자연보전을 추진한 대통령. 동시에 해군력과 미국의 해외 영향력 확대를 지지해 개혁과 팽창의 공존을 보여 준다.
우드로 윌슨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국제연맹 창설을 추진한 대통령. 국제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연방정부의 인종분리와 전시의 반대 의견 탄압을 용인했다.

주요 지명

헐하우스
시카고 이주민 지역의 세틀먼트 시설. 교육·돌봄·사회조사를 결합해 도시 빈곤에 대응한 개혁의 현장이었다.
필리핀
스페인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려던 독립 세력이 미국의 지배에 다시 맞선 군도. 미국의 민주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모순이 드러났다.
베르사유
1919년 대독 강화조약이 체결된 프랑스의 장소. 국제연맹 구상과 전후 질서에 대한 기대, 식민지 주민의 좌절이 교차했다.

잠깐, 생각해 보기

소비자 보호와 여성 참정권을 지지한 사람이 식민 지배나 인종차별도 지지할 수 있었을까?

생각을 돕는 해설

실제로 그런 입장들이 공존했다. 개혁의 대상과 권리의 범위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집단의 평등을 지지했다고 판단하지 말고, 정책마다 수혜자와 배제된 사람을 확인해야 한다.

전쟁 뒤 미국은 대량소비와 문화 변화의 시대로 들어섰지만, 번영의 이면에는 인종 갈등과 경제적 취약성이 남았다. 다음 장에서는 1920년대와 대공황을 통해 그 모순을 이어서 살펴본다.

각주 · 연구와 사료

  1. 사료·사회사 해설Library of Congress, Progressive Era to New Era, 1900–1929: Overview (U.S. History Primary Source Timeline).

    개혁의 다양한 주체와 정책을 비교하는 자료다. 개혁이라는 이름이 인종·성별의 평등을 일관되게 보장했다는 뜻은 아니다.

    본문으로 ↑
  2. 공공 외교사 해설Office of the Historian, U.S. Department of State, The Philippine-American War, 1899–1902 (Milestones).

    필리핀 독립 세력의 목적과 미국 지배에 대한 저항을 다룬다. 1902년 공식 종전 선언 뒤에도 저항이 이어졌음을 구분했다.

    본문으로 ↑
  3. 학술서 · 대학의 공개 연구 소개Erez Manela, The Wilsonian Moment: Self-Determination and the International Origins of Anticolonial Nationalism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Harvard Weatherhead Center research description).

    활동가들이 윌슨의 언어를 현지 정치에 맞게 활용했다는 연구 논점을 공개 소개에서 확인했다. 미국의 영향이 각 독립운동의 유일한 기원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
이 장의 근거와 더 읽을 자료 · 10
  1. Library of Congress — Overview: Progressive Era to New Era
    기업 규제, 도시 개혁, 여성 참정권과 정치 참여. / Business regulation, urban reform, suffrage, and political participation.
  2. Office of the Historian, U.S. Department of State — The Spanish-American War, 1898
    푸에르토리코·괌·필리핀의 양도와 쿠바·하와이의 구별. / Territorial transfers and the distinct cases of Cuba and Hawaii.
  3. Office of the Historian, U.S. Department of State — The Philippine-American War, 1899–1902
    필리핀 독립 세력과 미국의 전쟁, 1902년 이후에도 계속된 저항. / War with Philippine independence forces and resistance after 1902.
  4. Office of the Historian, U.S. Department of State — U.S. Entry into World War I, 1917
    잠수함전, 치머만 전보와 참전의 배경. / Submarine warfare, the Zimmermann Telegram, and American entry.
  5. Library of Congress — World War I
    전쟁 동원, 국내 논쟁과 표현 자유의 제한. / Mobilization, domestic debate, and restrictions on free expression.
  6. National Park Service — Beyond 1920: The Legacies of Woman Suffrage
    제19조의 성취와 흑인 여성에게 남은 투표 장벽. / The amendment's achievements and continuing barriers for Black women.
  7. Harvard University — Erez Manela, The Wilsonian Moment in East Asia
    2009년 학술논문. 민족자결, 3·1운동, 세계적 반식민 운동의 관계. / Scholarly article on self-determination, the March First Movement, and anticolonial politics.
  8. National Park Service — Jane Addams
    헐하우스, 여성 참정권과 평화운동. / Hull-House, suffrage, and peace activism.
  9. USDA Food Safety and Inspection Service — Our History
    1906년 순수식품·의약품법과 연방 육류검사법의 제정. / The 1906 Pure Food and Drug Act and Federal Meat Inspection Act.
  10. Library of Congress — Suffrage Parade, Wash. D.C.
    1913년 3월 사진. LOC: No known restrictions on reproduction. / Photograph from March 1913; no known reproduction restrictions.

본문은 아래 자료와 사료를 바탕으로 새로 집필한 입문 해설입니다. 연표는 주요 사건을 선별했으며, 그림은 제작자의 시각을 담고 있어 당시 현실 전체를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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