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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ics · Science 02

기술을 통한 진보, 그러나 누구의 진보인가

Vorsprung durch Technik을 AI 시대에 다시 읽습니다.

윤리·과학칼럼

AI 화면과 기계 부품, 나침반과 공책 앞에서 인간이 판단을 숙고하는 장면
기술이 더 똑똑해질수록, 인간의 감각과 판단은 더 깊어져야 합니다.

기술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그 기술은 우리를 더 유능하게 만들고 있을까요, 아니면 없어서는 안 될 것만 하나씩 늘리고 있을까요.

저는 자동차를 볼 때 조금 오래된 기준을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화면이 얼마나 큰지, 옵션이 얼마나 많은지, 브랜드 이미지가 얼마나 좋은지보다 먼저 보는 것이 있습니다. 차가 노면을 어떻게 읽는지, 코너에서 앞머리와 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스티어링이 운전자에게 무엇을 알려주는지,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무게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옮겨가는지 같은 것들입니다.

저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닙니다. 노면 위에서 관성과 중력, 마찰, 타이어의 접지, 차체의 강성을 다루는 기계장치에 가깝습니다. 좋은 차는 이 복잡한 물리 현상을 운전자에게 거칠게 떠넘기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숨기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정보는 남기고 잡음만 걸러내지요. 저는 그 균형이 좋은 차를 좋아합니다.

기계가 인간에게 대답하는 방식

폭스바겐 골프를 좋아했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화려하거나 과시적인 차는 아니었지만 움직임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전륜구동 해치백인데도 코너에서 앞과 뒤가 따로 노는 느낌이 적었고, 운전자의 조작에 과장 없이 대답했습니다. 그렇다고 무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캐딜락 ATS에서 느꼈던 인상도 비슷했습니다. 한때 미국차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단번에 흔들 정도로, 그 차는 기계적으로 진지했습니다.

아우디를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이 브랜드에는 좋은 의미의 기계공학적 고집이 있었습니다. 콰트로와 차체, 조립감, 실내의 질서, 버튼 하나의 감촉에서도 그 고집이 느껴졌습니다. 멋을 부리는 것보다 기계와 사람의 접점을 오래 다듬어온 브랜드라는 인상이었습니다.

콰트로 구동계의 앞뒤 차축과 디퍼렌셜, 동력 흐름을 보여주는 도식 이미지
좋은 기술은 보이지 않는 원리를 감추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기계를 신뢰할 수 있도록 원리와 감각 사이의 접점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저는 아우디의 오래된 슬로건, “Vorsprung durch Technik”을 좋아합니다. 보통 “기술을 통한 진보”라고 번역되는 말이지요.

이 문장은 한때 독일 기계공학의 자신감처럼 들렸습니다. 엔진, 변속기, 섀시, 서스펜션, 소재, 공력, 조립 품질. 과거의 기술은 주로 금속과 기계의 언어였습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세계였습니다.

기술이라는 말이 넓어진 시대

하지만 이제 기술이라는 단어는 훨씬 넓어졌습니다.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데이터, 배터리, 반도체, 자율주행, 네트워크, 보안, 사용자 경험까지 모두 기술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자동차는 더 이상 바퀴 달린 기계장치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움직이는 컴퓨터이자, 네트워크에 연결된 단말기이며, 때로는 운전자의 판단을 대신하려는 시스템입니다.

이 변화를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기술 덕분에 자동차는 더 안전하고 조용해졌으며, 훨씬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차 문을 열고 충전 상태를 확인하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어제 없던 기능을 얻기도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입니다.

자율주행 차량이 도로와 주변 차량을 인식하며 달리는 장면
오늘날의 자동차는 더 이상 바퀴 달린 기계장치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움직이는 컴퓨터이자 판단을 보조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다만 편리해졌다는 사실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도 함께 발전하는가.

우리는 더 많은 자동화와 더 큰 화면, 더 똑똑한 알고리즘을 곧 인간의 진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삶은 편해집니다. 그와 동시에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고장 났을 때 어디부터 살펴야 하는지, 바탕에 놓인 원리가 무엇인지는 점점 알기 어려워집니다.

편리함은 능력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취약함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물리 버튼과 스마트폰 키가 보여주는 것

자동차의 물리 버튼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터치스크린이 세련되어 보입니다. 디자인은 깔끔해지고, 메뉴는 자유롭게 바뀌며, 제조사는 기능을 업데이트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운전 중에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물리 버튼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손끝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장갑을 끼고 있어도, 비상 상황에서도, 화면이 순간적으로 먹통이 되어도 작동합니다.

물리 버튼은 그저 오래된 방식이 아닙니다. 사람의 감각과 기계의 기능을 바로 연결하는 장치입니다. 기능이 화면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손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계는 조금씩 좁아집니다.

스마트폰 키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상시에는 놀랍도록 편합니다. 하지만 계정 연동이 풀리거나, 통신이 불안정하거나, 배터리가 방전되면 차는 멀쩡한 기계장치임에도 움직일 수 없는 물건이 될 수 있습니다. 엔진이나 모터가 고장 난 것이 아닙니다. 바퀴가 빠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차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물리적 기계 위에 얹힌 보이지 않는 인증 체계가 전체 시스템을 멈춰 세우는 것입니다.

멀쩡한 기계가 보이지 않는 인증 절차 하나 때문에 멈춰 서는 장면은 오늘의 기술문명을 꽤 잘 보여줍니다.

문제는 기술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기술이 인간의 이해와 통제 가능성을 넘어설 때, 인간이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 앞에서 점점 무력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좋은 도구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킵니다. 나쁜 방식으로 설계된 도구는 인간의 능력을 대신하면서, 결국 그 능력 자체를 잊게 만듭니다.

첨단 기술은 가장 먼저 공격받습니다

이 문제는 자동차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군사 분야로 가면 훨씬 심각해집니다. 현대전은 드론, 위성, GPS, 데이터링크, 인공지능 분석, 정밀유도무기, 네트워크 중심 전장으로 움직입니다. 이것들은 분명 압도적인 힘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먼저 공격받는 것도 바로 그 첨단성입니다.

드론과 전장 네트워크, 장갑차와 병력이 연결된 현대전 장면
네트워크와 센서가 전장을 바꿉니다. 그러나 연결이 끊겼을 때도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첨단성은 곧 취약성이 됩니다.

통신이 끊기고, GPS가 교란되고, 센서가 속고, 데이터가 오염되면 어떻게 되는가. 첨단 장비를 가진 군대가 곧 강한 군대인 것은 아닙니다. 진짜 강한 군대는 첨단 장비가 망가졌을 때도 임무를 계속할 수 있는 군대입니다.

지도와 나침반을 읽을 수 있는가. 상급부대와 통신이 끊겨도 지휘 의도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 자동화된 시스템이 실패했을 때 수동 절차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가. 전자장비가 침묵할 때도 사람의 눈과 귀와 판단력이 살아 있는가.

결국 첨단 기술의 시대일수록 가장 오래된 능력이 다시 중요해지는 셈이지요.

기술을 더 잘 쓰기 위하여

이것은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생존성 문제이기도 합니다. 기업도, 군대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을 많이 도입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구성원들이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시스템의 결과만 받아들이는 조직은, 평상시에는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놀라울 만큼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기술을 거부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인공지능과 전기차, 자율주행,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는 계속 발전해야 합니다. 다만 그 발전이 사람을 더 무능하게 만드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좋은 기술은 감각과 판단과 이해를 빼앗기보다 넓혀주어야 합니다.

신앙의 언어로 말하면 이것은 청지기직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도구는 선물일 수 있지만 주인은 아닙니다. 시스템이 판단을 도울 수는 있어도 책임까지 대신 져주지는 못합니다.

기술을 통한 진보라는 말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의 주체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닙니다. 기술을 만들고 이해하고 사용하며, 그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이 진보해야 합니다. 원리도 한계도 모른 채 시스템의 결과 뒤에 숨고, 실패했을 때의 대안도 준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진보라기보다 정교하게 포장된 의존에 가깝습니다.

기술을 통한 진보, 그러나 누구의 진보인가

낡은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닙니다. 최신 기술이 무조건 선하다는 말도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그 둘 사이의 성숙한 길입니다.

자동차는 더 똑똑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운전자가 차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무감각해져서는 안 됩니다. 인터페이스는 더 편리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기능은 비상시에 손끝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공지능은 더 강력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력과 책임감이 함께 강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발전한 것이 아니라 더 의존적인 존재가 될 뿐입니다.

아우디의 “Vorsprung durch Technik”은 이제 독일 기계공학의 오래된 구호로만 남아서는 안 됩니다. AI와 소프트웨어, 자동화와 네트워크의 시대에 이 문장은 더 넓은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기술을 통한 진보. 그러나 누구의 진보인가.

기술의 진보만 있고 인간의 진보가 없다면, 우리는 더 편리한 세상에서 더 취약한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인간을 편하게 만드는 기술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더 깊게 만드는 기술은 훨씬 드뭅니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결국 후자일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은 기술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길도, 기술 이후의 인간 없는 미래로 떠밀려가는 길도 아닙니다.

기술을 쓰되 기술에 끌려가지 않고, 편리함을 누리되 감각과 판단과 기본기를 잃지 않는 길이 필요합니다. 기계가 더 똑똑해지는 동안 사람의 분별력도 함께 자라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다시 읽어야 할 기술을 통한 진보이며, 어쩌면 우리가 찾아야 할 제3의 선택일 것입니다.